책, 운명이다 -유시민 정리 :: 2010/05/10 18:14

얼마전 손석희 교수님의 라디오 시선집중에 유시민후보가 출연했을 때, 노짱의 자서전을 정리하고 있다고 했었다.
5월 출간예정이라 시간이 촉박하다고 했다.
기다려졌다.
그리고 출간되기 며칠전 예약판매 메일이 왔길래 덥썩, 주문을 했더랬다.
그와 관련된 책이 몇권 있긴 하지만, 제대로 읽은 건 이게 처음이다.
그가 꿈꾸었던 세상, 고뇌, 좌절, 애닮음이 느껴졌다.
지금 내가 몸이 안좋아 좀 더 감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덮으며 좀 오버해서 말하자면 잠시 엉엉 울었다.
그의 사인이 받고 싶었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대화가 통할지 몰라도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보는 내내 생각이 많아졌고, 좀체 다음장으로 넘기는게 힘들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그는
사람냄새 폴폴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곧 그의 1주기가 돌아오는데, 여전히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1년전 내가 흘렸던 눈물이, 아픔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언제쯤 실현될까-
P. 58
버림받은 사람은 도덕적 성숙을 이루기 어렵다. 자기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자부심이 있어야 모범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책임 있는 주체로 참여시켜야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기회, 참여, 책임...... 대통령을 하면서도 늘 이런 것들을 어떻게 실현할지 고민했다.
P. 92
1980년대의 수많은 민중가요 중에서도 <어머니>라는 노래가 특히 좋았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서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이 노래 첫 구절 '사람 사는 세상'을 꿈으로 삼았으며 1988년 13대 총선 선거구호로 썼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 때도 종종 이 노래를 불렀다.
P. 156
슬펐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고, 점차 노여워지더니, 나중엔 슬퍼졌다. 무력감과 막막함이 뒤섞인, 그런 슬픔이었다. 권력을 잡아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P. 188
사실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였다. 우리 역사에 그런 지도자는 없었다. 정말 오랜 기간 동안 독재와 싸웠다. 암살 위기도 겪었다. 구속당하고 연금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그래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민주주의 노선을 견지했다. 국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나면 그런 사람은 보통 투표를 할 필요도 없는 수준의 지도자가 된다. 건국의 아버지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 바츨라프 하벨, 레흐 바웬사 대통령이 모두 그랬다. 그것이 정상이다.
P.190
무엇보다 김대중 대통령은 독서를 많이 하는 지도자였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저자가 서문에 이렇게 써 놓은 것을 보았다."세종대왕은 책을 많이 보면서 거기서 정책을 찾곤 했는데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아주 잘못 안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 계실때 큰 방 하나가 통째로 서고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감옥에 갇히고 자택에 불법 연금되어 있었던 시기에 독서를 많이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그런 엉뚱한 소리를 써 놓은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냥 미주투사가 아니고 뛰어난 사상가였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지식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지식을 요령 있게 활용하는 지혜까지 지닌 특별한 지도자였다. 국민들이 그것을 잘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P.233
나는 체질적으로 허리를 잘 굽히는 편이다. 남보다 윗자리에 앉으면 무언가 불안하고 불편하다. 대통령이라고 모든 행사장에서 제일 윗자리에 앉아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 적응하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다. 나는 말을 위엄 있게 행동을 기품 있게 해야 하는 환경을 경험한 적이 거의 없었다.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면서도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준비 없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언어와 태도에 관한 한 나는 분명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었다.
P. 240
쉼터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아내는 우리 편이 저렇게 많이 왔다고 좋아했지만 나는 겁이 났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밤마다 촛불을 들고 와서 나를 탄핵에서 구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게 무엇을 요구할까?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촛불 시민들의 함성에 실려 왔다.
P.279
언론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책임의식 부족이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상관없다. 그러나 사회적 공론의 장을 열고 공정한 토론의 장을 여는 책임을 팽개쳐서는 안 된다. 정부의 언론 정책을 비한 할 때에도 최소한 사실에 관한 정부의 주장은 함께 보도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에 대해서까지 정부의 주장을 봉쇄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말했더니, 그 말은 아예 소개도 해 주지 않았다.
P.289
정치가 발전하지 않은 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예가 없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달린 과제이다.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는 모두 최종적으로는 정치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영남에서는 모든 인재와 자원이 한나라당으로 몰린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으로 몰린다. 그 지역에서는 다른 정당을 통해서 국회에 진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반작용으로 충청도에서도 지역당이 끈질긴 생존력을 유지했다. 수도권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부모와 자신의 출신 지역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정책 개발보다는 다른 지역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선거운동 방법이 된다. 정책의 차이가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감정싸움은 몸싸움으로 전환된다. 모든 정당에서 강경파가 발언권을 장악한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발붙이기 어렵다. 국회의원을 대폭 물갈이해도 소용이 없다. 이것이 내가 20년 동안 경험한 대한민국 정치의 근본 문제였다.
P.295
원칙을 지키면서 패배하면 다시 일어설 수가 있다. 그러나 원칙을 잃고 패배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나는 이기든 지든, 매순간 원칙을 지키면서 선거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P.332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
운명이다
노무현재단 엮음, 유시민 정리. 2010.